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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문아카데미는 유럽 인문학 공부를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지성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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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 of European Humanities

유럽인문아카데미가 인문학의 새 지평을 엽니다

유럽인문아카데미는 유럽 인문학 공부를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지성의 공간입니다.

발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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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인가?

오늘날 한반도 거주민은 유럽에서 기원한 ‘근대적modern’ 삶의 방식을 영위한다. 자본주의 남한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 병영국가 북한 역시 그 삶의 방식은 — 현대세계에서 그 모습이 아무리 기형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역시 — 근대적인 사회적 분업을 바탕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외세의 강요에 의한 근대화의 출발은 자연스레 ‘전통’과 ‘우리 것’을 동일시하려는 국수주의적 사고 편향을 낳았지만, 이것은 ‘우리 전통’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사고 편향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 거주민의 지금 ‘우리 것’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인 ‘삶의 방식Lebensweise’이 바로 ‘유럽적’이기 때문이다.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현재 유럽 및 미주 국가들과 삶의 방식 및 방향을 공유하는 대한민국이 자신의 역사를 한반도 내지 동아시아에만 국한해서 이해한다면 그러한 자기이해는 불완전하고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 주민으로서 ‘나 혹은 우리’를 규정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불가피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유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유럽을 아는 것은 지금의 ‘우리 혹은 나’를 아는 데 필수적이다. 물론 이념사적으로 볼 때 ‘근대’에 대한 대안사회 추구에서 출발한 북한은 여러 이유에서 오히려 역사적 반동의 길을 걸어갔고, 결국 그 유럽적 선례인 파시즘 체제로 귀착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었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더욱더, 북한을 이해하는 데서도 유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통에 대한 적절한 해석과 합당한 평가 역시 유럽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우리’의 오늘에 대한 포괄적이고 균형적인 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즉 과거를 살펴 미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나 혹은 우리’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하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바람직한 공동의 미래를 구상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한 선결과제이다. 그것은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을 요구한다. 내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되고 싶은 나’, ‘만들고 싶은 우리’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한반도에서, 유럽을 이해하는 일은 바로 내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이며, 누구인지를 묻고 그 답을 찾는 데 필수적인 일인 것이다.

왜 인문학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적 삶’의 규정은 이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역사만큼이나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성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학기술Technology을 바탕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자본주의 시장사회가 근대의 핵심특징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를 극복하려던 최초의 국제적 시도인 공산주의 실험이 역사적 실패를 겪은 이후 공산권 국가들이 — 북한 등 극소수의 지역을 ‘아직은’ 제외하고 — 모두 자본주의 시장사회 체제로 복귀한 사실은 인류가 실제에서나 상상력의 측면에서나 유럽적 근대라는 역사적 삶의 틀을 여전히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사회가 근대의 본질적 특징이라는 점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사회가, 한마디로 유럽적 기원을 갖는 근대가, 인류에게 유례없는 풍요와 편의를 선물하였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이 명제는 바로 그 추상적 보편성 주장 때문에 또한 허위이자 폭력이다. 인류 전체의 자유와 복리를 이상으로 내세운 유럽 근대는 이내 계급적 분열과 불평등, 그리고 제국주의라는 자기모순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대다수 인류에게 자유가 아니라 질곡을, 풍요로운 복지가 아니라 비참한 가난과 모멸, 그리고 환경파괴를 안겨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근대의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은 오늘날까지도, 어느 곳에서나, 근대를 넘어선 삶의 지평을 꿈꾸게 한다. 그런데 꿈은 항상 겪은 일, 살아온 삶을 반추한다.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 꿈속에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성찰을 통해 닦아나갈 수밖에 없다.

어느 곳에서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초래하는 불평등과 인간소외,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우선주의는 근대화의 산물이고, 따라서 유럽적 기원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 근대의 꿈은 봉건적 질곡과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도 사실이다. 서양 중세가 어둠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음을 드러낸 계몽의 횃불은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점화되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ㆍ로마 문화의 유산을 발굴하고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의 초석이 된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만들어낸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풍요를 억압하고 저해하는 불합리한 전통에 의연히 맞서는 비판적 인문정신도 발휘하였다. 이로써 근대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이념적 자기모순을 내장內藏하였지만 다른 한편 근대를 넘어설 디딤돌이 될 정신적 자산도 함께 만들어냈다.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의 비판적 인문정신은 무엇보다 인문학으로 제도화 됐고, 19세기에 ‘휴머니즘’이란 호칭을 얻었다.

인간은 밥이나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그러나 이 말이 근대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유럽 근대의 지향에 근대 극복의 이념과 실천이 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유럽 인문학이고, 이의 학습을 통해 연마되고 발휘되는 인문정신이다. 유럽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일은 유럽 근대의 기원과 발전을 탐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근대의 한계를 인식하고 근대를 넘어설 꿈을 꾸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적 기원을 갖는 근대적 삶을 사는 대한민국에서 유럽 인문학을 공부해야 마땅한 이유이다.

왜 일반인 대상의 ‘아카데미’인가?

본래 서양 중세 말 성속聖俗협동지배체제 유지를 위한 손발을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대학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본거지가 되어 유럽 근대를 창출하는 첨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근대를 극복할 대안적 지식을 안출案出하는 전위역할도 하였다. 근대화를 선도할 핵심 역량을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근대의 자기모순을 극복할 대안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비판적 지식인도 키워냈다. 비루하고 고루한 오늘과는 다른 새로운 내일의 비전을 창출하는 일이 대학의 고유한 사명으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자본을 위시한 사회권력의 손발이 되어 희망찬 내일이 아니라 절망적인 오늘을 재생산하는 하청공장이 되다시피 하였다. 정상배들이 판치는 정치판이나 이윤에만 눈먼 시장판에나 어울릴 법한 대학운영이 ‘경쟁력’과 ‘효율’을 핑계로 대세가 되었고, 인문학은 허울만 남았다. 그런 만큼 대학을 다시 비판적 인문정신의 거처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대학 안의 현실은 오히려 암울하다.

물론 대학 바깥의 대중 교육 현실은 더 참담하다. 소위 ‘인문학 열풍’은 다시 한번 대중문화의 상업적 천박함만을 드러냈을 뿐 비판적 인문정신의 발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인문학 열풍’은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절실하게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아직은 백일몽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꿈은 그나마 대한민국 사회가 품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이 꿈에 제대로 응답하는 길은 무엇인가? 확실한 답은 없다. 하지만 진정 공익적인 사업의 틀을 꾸려서 인문학적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함께 공부하는 일은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정에서 결코 우회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것이 오늘날 인문지성의 산실이기를 포기한 대학의 대안으로서 유럽 인문학의 학습과 연구를 매개로 비판적 인문정신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대안대학인 ‘유럽인문아카데미’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이다.